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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방
울산김씨 홈에서 제공하는 종중관련 자료 토론방입니다.관심 문의사항 등제코자하는자료 사진등은 메일주시면 성의껏 편집 종친 여러분께 공지토록 지원합니다 e-mail kimka45@daum.net
작성자 송암 김강        
작성일 2009-12-04 (금) 11:12
ㆍ추천: 0  ㆍ조회: 3863      
IP: 125.xxx.20
경주김씨의 선계보 대혼란!
*운영자주  본글은 경주김씨 중앙종친회 총무부회장께서 운영자에게 보내오신 메일문서입니다.
요지:1995년부터  같은 경주김씨 장군공파 계보연구회에서 자신들의 씨족선대를 허위로 판독된 신라삼성연원보까지 날조 마의태자 후예로 온통조작 각종홍보물을 작성 무작위 배포로기존경주김씨들의 독선적인 이론에 경주김씨 중앙종친회가 이제야 재정신이 든모양입니다.

1.경주김씨 중앙종친회의모순
: 경순왕의 후예 경주김씨편사에일대전향적인 사관이 정리되야 된다고 사료됩니다.경주김씨 중앙종친회는 신라가 망하고 800여년지난 1784 조작된 오룡산지석을 빌미로경순왕의8왕자설을 퍼뜨려 경순왕의 후예에
대한 역사를 이땅에서 만들어 내어 경주김씨족보가 현세를 지배하고 있다.그후 각신라 김씨 족보들은 하나같이 경주김씨 족보를 정설인양 배타적으로 인용  자신들만의 족보를 만들었다.
같은 경순왕의2왕자이며서 울산김씨의 시조를 별빈으로폄 하하는등--
우리는 이문제를 10여년간 이해와설득으로 경주김씨와 협의하였다  근거제시도 못하며서 자신들도 경순왕소생의 적자가 아니라 망해버린왕국. 후처 낙랑공주도  별빈이 아니런가! 지금까지도 자신들이  적통인양 꿈속에서 살고 있는 경주김씨들 빨리 사고의 변화있기를 촉구한다. 그래서 우리들 경순왕의 후예들 대동단결 서로의 의견을 존중 씨족의 자긍심에 상처는 주지말아야한다.
2.경주김씨 계보연구회의 모순 
경주김씨 계보연구회는 장군공파 순웅공파의 계보가 잘못되었노라하고 일방적으로 1995년 돈있는 졸부가 신라삼성연원보를 인용 일대 경주김씨 시조 사기극을 벌이고  15년이지난 현세에는  경순왕의 계보가 온통뒤죽박죽 비빔밥이 되여버렸다.온통가짜가 정설화작업이 이루어져 가고있는 현실이다.--- 토론중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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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연원보 경김대응
  2009년 12월 03일 목요일, 오전 11시 17분 23초 +0900
 
  <kimka45@daum.net> 추가
  장생건설(주)
안녕하세요.
저는 중앙종친회 청년회 총무부회장
경주김씨 두계공파 사무국장 김석원입니다.
아래내용을 참고하세요.(02-2635-0738.010-2383-2271)
 
 
 
Re:경주김씨의 씨조는 누구입니까?|공지사항
경김종친회 | 조회 80 | 03.11.14 17:01 http://cafe.daum.net/kyongkim/8aGc/46 
// 종보 어디에 순응 할아버지가 대안군 후손이 아니고 마이태자 후손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종보 295호(1999년 12월 31일)에 "麻依太子는 2명일 수 없다"기사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라삼성연원보"라는 책자에 순웅장군공파의 계대표시가 잘못되어 엉뚱한 계보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경주김씨종사연구위원회에서는 삼성연원보책자는인출된 연대와 편저자가 어느 때 누구인지 전혀 의심스러운 譜라하기도 미흡하고 史라하기도 부적한 異問奇事를 모은 책같기도 하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단법인 신라문화보존회에서 삼성연원보를 잡지수준....

다음은 소위 대장군공파에서 사단법인 신라문화보존회에 요청한 경순대왕 약사 내용

수정보완 요구에 대한 신라문화보존회의 회신 내용입니다. 저희 원조이신 순웅장군공께서 마의태자의 子이니 아니니 하는 부분에서 도움이 되실겁니다. 참고바랍니다.


敬順大王世系圖를 修正하지 못하는 理由

1. 貴 門中에서 送付한 大將軍公世系 및 法院決定文을 檢討한 結果 金景大가 私纂한 雜誌水準의 新羅三姓淵源譜를 典據로 한 貴門中의 世系圖는 本會에서 認定할 수 없고 法院決定文에서도 “김순웅과 마의태자 김일의 관계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아니하였지만...”이라 하였는데 貴 門中에서 마치 법원에서 系代가 認證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語不成說이고 宗人들을 欺罔하는 行爲입니다.

 

決定文 “판단(2) 1784년 金殷說 묘지(墓誌)가 발견됨에 따라 경순왕 첫째 아들은 김일(金鎰)이고...”하였는데 新羅三姓淵源譜(소을6호증)에는 金鎰이 敬順大王의 여섯째 아들로 登載되어 있습니다. 貴 門中에서 “소을6호증”을 提出할 때 金鎰의 子 善雄 ․ 順雄등 以下系代만 提出하여 却下決定을 誘導하려 하였는지는 不知하나 金殷說의 墓誌 내용과 三姓淵源譜의 내용은 완전히 相馳됩니다. 本會에서는 三姓淵源譜라는 僞造된 雜書는 認定할 수 없습니다.

 

2. 金之岱(淸道金氏 貫祖)公에 關하여 貴門中에서 提示한 世系에는 敬順大王 六世孫 元鼎公의 次子로 그 兄은 之說로 表記하고 있으나 高麗史에 의하면 金之岱는 1190년(明宗20年)生으로 神宗 ․ 熙宗 ․ 康宗 ․ 高宗을 거쳐 元宗7年(1266)에 별세한 분으로 敬順大王의 9세손입니다. 더구나 敬順大王의 四子 殷說의 7세손인 余興公의 三兄弟中 三子로 長兄은 之璜이고 次兄은 之球이며 之岱公에게 之說이라는 兄이 없습니다.

 

3. 貴 門中에서 本會가 發刊한 敬順大王 略史를 修整補完하지 않으면 “法的問題 警告”등 傲慢放恣한 文句를 使用하여 憲法에 保障된 學問硏究나 出版의 自由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만약 貴 門中에서 法的問題를 提起하신다면 언제든지 對應할 準備가 되어 있음을 告知하는 바이니 諒知하시기 바랍니다.









출처:계림군파 대종회
  
 
 
 
 
경주김씨 중앙종친회 경고
1. 전국의 종친들은 계보연구회가 발표하는 계보도는 단지 그들만의 연구물일뿐 역사적 신뢰성이 의심되므로 활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 계보연구회는 향후 연구지에 계보도를 게재할 경우 일반 독자들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서두에 연구의 목적과 방법, 그리고 연구물의 신뢰한계를 명시하여 계보도 오용에 따른 책임한계를 분명히 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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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계보연구회에서 발표하는 게보도에 관하여 중앙종친회에서는 종사연구위원회를 열어 여러 차례의 논의를 하고 계보연구회의 발표물에 따른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엄중 경고한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보연구회가 계속 간행한 2004년 추, 동 합본 연구지에 수록된 계보들은 경주김씨 각 종파의 선계대 뿐만 아니라 시조 대보공 후 여러 본관들의 연원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계통을 보이고 있다.
경주김씨 중앙종친회와 무관하게 운영되고 있는 계보연구회의 단순한 연구활동이 자칫 황당한 역사 소설처럼 각색되어 각 종파 내에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으므로 그 계보도의 신뢰성이나 이용에 관하여 적절한 경고를 하지 않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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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은 중앙종친회 총재단회의(2005년 2월 18일)에서 논의하여 공지하는 것이고
경주김씨종보(제357호, 2005년 2월 28일자)에 게재하였으므로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연안김씨 선계연구(고증문헌을 중심으로)


 

연안김씨의 선계에 대하여 기해보,을유보,안락당집,선원보감,씨족원류,신라삼성연원보,동국김씨문헌록을 고증자료라 하면서 시조 박사공을“신라신무왕차자영광공후예(新羅神武王次子英光公後裔)”라고 주장하는 일부 종인이 있습니다.

그 주장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기해보, 을유보, 안락당집, 선원보감, 씨족원류 이상 5개의 문헌에는“연안김씨는 신라종성으로 왕에게 직간하다 미움을 받아 연안으로 유배된 분이 있어, 그 후손으로 고려 명종 때 국자감 사문박사이신 휘 섬한을 시조로 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해보(1719년), 을유보(1765년)는 우리 연안김씨의 족보이고, 안락당집은 희락당(안노)공이 그의 아버지 안락당공의 문집을 정리한 것으로 1516년에 간행한 것이며, 선원보감에는 인목대비의 능지문이 실려있습니다.

안락당집의 세계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연안김씨세계록(延安金氏世系錄)
김씨계출신라종성초형제이인재국직간오왕류원지수제적형거북빈경제거시염성인가언고구려시동삼홀지칭시염성후개해고군국자박사휘섬한시기후손유박사공이상세원무적불가고
(金氏系出新羅宗姓初兄弟二人在國直諫오王流遠地遂除籍兄居北濱京弟居시鹽城因家焉高句麗時冬參忽地稱시鹽城後改海皐郡國子博士諱暹漢是其後孫由博士公以上世遠無籍不可考)

원문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김씨는 신라왕족에서 나왔다. 처음에 형제 두 사람이 있어 옳은 말로 왕에게 간하다가 오히려 미움을 받아 먼 곳으로 유배되고 제적되어 형은 북빈경에 살았고, 아우는 시염성에 살면서 한 집안을 이루었다. 시염성은 고구려 때 동음홀 땅으로 후에 해고군으로 고쳐 부르고 서해도에 예속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염주라고 불렀으며 공민왕 때 연안부로 개칭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국자감 사문박사 휘 섬한은 그 후손이며, 박사공 이상의 세계는 아득히 멀고 기록이 없어 상고할 수 없다"

인목왕후 능지문은 왕조실록에 기록된 자료이며, 국가에서 작성한 공식문서로서 중요한 역사적 사료입니다. 인목왕후 능지문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목 왕후의 산릉(山陵)에 흙을 덮는 일이 완성되자, 상이 신 유(維)가 사액(詞掖)의 관장(官長)이라 하여 현궁(玄宮)의 지문(誌文)을 지으라고 명하시기에, 신이 명을 받고 황공 스러웠으나 스스로 직책의 일을 생각해 보건대 감히 글을 못한다고 사양할 수 없었다. 삼가 살펴 보건대 왕후(王后)의 성은 김씨(金氏)로서 선계(先系)는 신라(新羅) 왕족에서 나왔다. 그 뒤에 바른 말로 간(諫)하다 죄(罪)를 입고 시염성(시鹽城)으로 귀양간 이가 있어 자손(子孫)들이 인(因)하여 관향(貫鄕)을 삼았는데 뒤에 연안부(延安府)로 고쳤다. 시조(始祖)는 김섬한(金暹漢)인데 고려의 사문박사(四門博士)이며, 4대를 지나 도(濤)에 이르러서는 문장과 절행이 있어 황조(皇朝)의 제과(制科)에 급제하여 동창부(東昌府) 안구현승(安丘縣丞)에 제수되었고, 동쪽으로 돌아와서는 벼슬이 밀직제학(密直提學)에 이르렀으며, 또 4대가 지나 충정공(忠貞公) 김전(金詮)에 이르러서는 영의정 벼슬을 하여 청백(淸白)으로써 소문났는데, 왕후에게 고조(高祖)가 된다"

씨족원류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씨족원류(氏族源流)는 1665년경에 조종운( 趙從耘)이 540여 성(姓)에 관한 자료(資料)를 포집하여 필사(筆寫)했던 책을 후손인 조용진(趙鏞珍)교수가 수장(收藏)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1991년에 보경문화사에서 영인(影印)출판한 것이다.
이 책에 延安金氏의 기록을 보면 김섬한(金暹漢) 국자사문박사(國子四門博士) 신라시유왕자형제이직간오주의적원지(新羅時有王子兄弟以直諫?主意謫遠地) 형거북빈경금강릉지제거시염성인이위향(兄居北濱京今江陵地弟居?鹽城因以爲鄕) 후손섬한등제위박사훈회후학불권(後孫暹漢登第爲博士訓誨後學不倦)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김섬한은 국자사문박사이며 신라시대에 왕자형제가 있었는데 왕에게 직간하다가 오히려 미움을 받아 먼 곳으로 유배되었는데, 형은 북빈경 지금의 강릉땅에, 동생은 시염성에 살면서 관향을 삼았다. 그 후손으로 섬한이라는 분이 과거에 급제하여 박사가 되었고 후학들을 가르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연안김씨의 연원에 대하여 확실하게 밝히고 있는 기록들입니다. 박사공 이상의 선계는 신라왕자라는 사실 외는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적고 있습니다. 시조 박사공이 신무왕이나 영광의 후손이라는 말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분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고증문헌은 신라삼성연원보, 동국김씨문헌록 뿐입니다. 그 분들은 신라삼성연원보, 동국김씨문헌록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신라삼성연원보(新羅三姓淵源譜)는 인조 때인 1642년에 처음 발행된 것으로 소와(昭化)9년(1934년) 5월30일 김경대(金景大)라는 사람이 그 이후의 내용을 첨가하여 저작발행 하였다라고 하면서 이 책 111페이지에 "신라왕자영광후손섬한고려사문박사입대명등과형제이직간오주지적원지형거북빈경금강릉제거염성금연안자손인이위향박사훈회후학(新羅王子英光後孫暹漢高麗四門博士入大明登科兄弟以直諫?主旨謫遠地兄居北濱京今江陵弟居鹽城今延安子孫因以爲鄕博士訓誨後學)"라는 내용을 고증자료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국김씨문헌록(東國金氏文獻錄)은 대보공탄강이천유여년기사입춘성균진사월성김한식근식(大輔公誕降二千有餘年己巳立春成均進士月城金漢植謹識), 통정대부비서원승원임규장각직각은진송규헌(政大夫秘書院丞原任奎章閣直閣恩津宋奎憲) 서문(序文)으로 1637년 정축척화신등재이후출간(丁丑斥和臣登載以後出刊)하였다고 하면서 그 책 2페이지에"연안김씨선조섬한신라왕자후야고려명종조사문박사입대명등제(延安金氏先祖暹漢新羅王子后也高麗明宗朝四門博士八大明登第) 신라왕자영광후섬한제야형제이직간오주지적원지형거북빈경금강릉제거시염성금연안자손이위향박사훈회후학(新羅王子英光后暹漢弟也兄弟以直諫오主旨謫遠地兄居北濱京今江陵弟居시鹽城今延安子孫以爲鄕博士訓誨後學)"이라는 내용을 고증자료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라삼성연원보, 동국김씨문헌록은 1930년대에 간행된 것으로, 이미 신라삼성연원보에 대한 허구성이나 오류에 대하여는 많은 지적이 있었습니다. 먼저 제작년대에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정황과 내용으로 볼 때 신라삼성연원보가 1934년에 제작된 책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신라삼성연원보록기(新羅朴昔金淵源譜緣起)에 신미맹추상한경순왕44세손택준근고(辛未孟秋上澣慶順王44世孫澤俊謹稿) 즉 "신미년 가을의 첫 상순 경순왕의 44세손 택준 삼가쓰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통 25년을 1세(世)로 계산할 때 경순왕이 탄생하신 서기882년부터 44대 후손의 신미년은 1931년으로 추정됩니다.

삼성연원보서(三姓淵源譜序)에 신라건국후(新羅建國後) 1699년 임신양월기망토산이승학근서(壬申陽月旣望兎山李承學謹序)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라건국 후1699년인 서기1642년 인조20년은 壬午年 입니다. 실제 임신년과는10년 차이로 년대가 맞지 않음에도 의도적 곡필한 것으로, 찬술자 이승학이 사용한 신라건국 후 몇년식 년호(年號)보다는 간지(干支)연호가 더욱 신뢰성이 있음으로 신라건국 후 1699년 임신년은 서기1932년 임신년을 의도적으로 곡필한 으로 추정됩니다.

은열공의 1자,2자 내용 중 "平安北道 龍川郡","全羅南道 長興郡 府南面 松岩里 金英贊家譜準記載"중에서 행정구역을 全羅南道, 平安北道로의 표기는 일제시대 행정구역 표시방법입니다.

책자의 저작겸(著作兼) 발행자(發行者)는 김경대(金景大)이며, 소화9년(1934년) 5月30日에 평안북도 신의주에 있던 유능진(劉能進)이 경영하는 광문사인쇄소에서 발간한 책입니다. 발행 후 조선총독부도서관 검인 "소화9년 6.25"이라고 확인인이 찍혀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신라삼성연원보는 서기 1931년(신미년)에 택준이란 후손이쓰고, 서기 1932년(임신년) 토산 이승학이 서문을 찬하여, 서기 1934년(소화9년) 김경대가 책자를 간행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본문중 우리 연안김씨편에 대제학재찬손유연문우상(大提學載鑽孫有淵文右相)이라는 내용으로 볼 때 1900년대 자료가 확실합니다.

1642년에 저술한 책을 300년후인 1934년에 김경대라는 사람이 추가기록하여 간행하였다 라고 하는데 그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고문을 가필하고 보충하여 다시 펴낼 때는 책이름 앞에 증보(增補), 신(新) 등을 붙이는 것이 통례입니다.
그리고 개명(改名)했다는 김경대와 300년 후에 복간한 김경대는 같은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경주김씨 종보 제350호(2004.7.31)에 "신라삼성연원보"는 그 내용이 근거도 없는 것이고 또 신빙성이 없는 것들로 채워져 있으며 이 책의 허구성에 대하여는 이미 1999년 12월 31일 "경주김씨 종보 제295호"에 그 오류를 지적한바 있다는 내용의 경주김씨 중앙종친회 안내문을 게재하고 있습니다.

삼성연원보에는 연안김씨에 대하여
“延安金氏殷烈公十四世孫暹后一云暹漢后高麗明宗朝四門博士入大明登科
新羅王子英光后暹漢兄弟以直諫?主旨謫遠地兄居北濱京今江陵弟居?鹽城今延安子孫以爲鄕博士訓誨後學”
(연안김씨은열공십사세손섬후일운섬한후고려명종조사문박사입대명등과
신라왕자영광후섬한형제이직간오주지적원지형거북빈경금강릉제거시염성금연안자손이위향박사훈회후학)
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연안김씨 시조 박사공을 경순왕의 아들 은열의 14세손이라고 했다가, 뒤에 가서는 신무왕의 아들 영광의 후손이라고 기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12세기 인물인 시조 박사공이 14세기에 개국한 명나라 과거에 급제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왜곡되고 잘못된 기록들은 무시하고, 그 분들의 주장에 필요한 부분만을 발췌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동국김씨문헌록의 서문을 쓰신 분이 통정대부 비서원승 은진(恩津) 송규헌(宋奎憲)이라 하는 바 "비서원승"은 갑오경장이후 "승정원승지"를 개칭한 관직이므로 제작 년대는 1900년대가 확실합니다.

실제로 동국김씨문헌록은 신라삼성연원보와 내용이 비슷하고 제작 년대가 비슷합니다.

시조 박사공이 명나라 과거에 급제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삼성연원보와 똑같이 우리 연안김씨편에 대제학재찬손유연문우상(大提學載鑽孫有淵文右相)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런 책이 병자호란, 척화론과 결부시켜 1637년에 간행된 문헌으로 둔갑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자료가 우리 연안김씨에 대한 선계를 밝힐 수 있는 고증자료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우리 연안김씨의 연원에 대하여 주옥같은 고문서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 1900년대에 제작된 책들에 근거없이 써놓은 것을 고증자료라 하여 선계를 왜곡시킬 수 있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간 수백년간에 걸쳐 선조들께서 박사공 이상의 선계를 밝히고자하였으나 불가능하였습니다. 세월이 오래되고 아무런 기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재까지는 박사공 이상의 선계는 불가고(不可考)로 하고 있습니다.

1900년대부터 쏟아져 나온 씨족사에 관한 기록들, 신라삼성연원보를 위시하여 다른 김씨들의 족보나 소위 선원계보라는 곳에 우리 연안김씨의 연원에 대한 왜곡된 기록들이 더러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무런 검증도 없이 그런 기록을 사실인양 인정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연구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006년 3월 10일 연안김씨대종회(延安金氏大宗會) 현창연구위원회顯彰硏究委員會)는 연안김씨 선계(先系)에 대하여, 이와 같이 혼란스럽고 고증(考證)도 없는 다른 집안 족보류(族譜類)의 기록을 일축하고 안락당집(顔樂堂集)에 근거하여 우리 연안김씨의 선계(先系)를“박사공이상의 선계는 불가고”임을 재확인하였다. 대종회에서 이에 그치지 말고 다른 김씨 등의 족보에 우리 선계에 대하여 왜곡하여 서술하고 있는 사실들에 대하여 바로 잡을 수 있는 조치를 서둘러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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