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유학자 하서 김인후  영세 흥왕의 터를 잡은 하소부인
동방의 유학자 김인후 약전1 단종에 충효를 다하신 손암 김신덕
동방의 유학자 김인후 약전2 남문창의 맹주로 활약한 오천 김경수
동방의 유학자 김인후 약전3 임진란에 종군하신 취옹 김남중
단종에 충절한 복양제 김수노 삼양사 창립등 대사업가 수당 김연수
명.황제를 감동시킨 백암 김대명 영원한 법조인의 사표 가인 김병노
진주성에서 순절한 판관 김천록 한국 지성의 거목 남제 김상협
현대사의 거인 인촌 김성수 추효업적을 이룩한 맥촌 김형지
세계의 언론인 일민 김상만 학문, 덕행, 효를 다하신 선조들
과거에 급제하신 선조 사환들 호남 여인열전 여흥민씨부인
난중에 정절을 지킨 열녀 할머니들  갤러리 게시판
너는 커서 河西가 되라

 단종왕에 충절하신 복양제 수노(粹老)

20世 號:복양제(復陽齊). 諱:수노(粹老)
흥려군의 장증손이며 司藝公의 장자로 호는 복양제시다.태종1년에 태어나시어 세종 29년에 음사로 관직에 진출하여 문종1년에의정부 녹사(錄事), 다음에 중부령(中部令)이 되었으나 단종은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의 지리를 빼앗기고 영월로 떠나게 되니 공은 즉시 조복을 불사르고 벼슬을 버린채 밤중에 숭례문을 나와 남으로 내려 오시면서피눈물로 읊은 시 한편(南下詩六十二韻)이 있으며.그날밤 생육신의 한분인 漁溪(어계) 趙旅(조여)와 함께 벼슬을 버리고 田里에 돌아와 숨어 세상에 나아가지 않으셨다.그후 從 애동을 2년간이나 서울에 머물게 하며서 上王의 거쳐를 탐지하여 비밀히 보고하도록 하였으며 편지를 볼때마다 북향 사배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1457년 단종의 영월비보 승하 소식을 종 애동으로부터 전해 듣고 실성 통곡하고 設位焚香(설위분향),음식을 드시지 않으시다가 아들 찬석에게 서고를 불태워 흔적을 없애고(焚稿滅跡),자취를 없애라하고,밤에 검암계 냇물 계곡 石壁에다 "君死이면 我當死:임금이 살면 나 또한 살고 임금이 죽으면 나 또한 죽는다".고 죽고 살기를 임금과 같이 하니 내 마음은 오직 하나 뿐 이어라"라는 絶命詩(절명시)를 쓰고 투수 자결로 입절 하시니 이 사실이 莊陵誌에 실려 있다.
함안 검암계에 순절비가 있으며 함안 유림이 1991년8월25일, 함안 가야읍 아라공원에 순절비를 새로 고쳐 세웠다.晦溪祀(회계사)에 배향되시다.
복양제 실기에 시문 약간이 전하여 공의 충의단심을 엿볼수 있다.

*검암계 바위에 새긴 글
임금이 살면 내 또한 살고 君生我亦生
임금이 죽으면 내 마땅히 죽으리라. 君死我當死
살고 죽기 임금과 같을지니 生死與君同
내 마음 오직 하나 뿐 我心惟一己
(이하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