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유학자 하서 김인후  영세 흥왕의 터를 잡은 하소부인
동방의 유학자 김인후 약전1 단종에 충효를 다하신 손암 김신덕
동방의 유학자 김인후 약전2 남문창의 맹주로 활약한 오천 김경수
동방의 유학자 김인후 약전3 임진란에 종군하신 취옹 김남중
단종에 충절한 복양제 김수노 삼양사 창립등 대사업가 수당 김연수
명.황제를 감동시킨 백암 김대명 영원한 법조인의 사표 가인 김병노
진주성에서 순절한 판관 김천록 한국 지성의 거목 남제 김상협
현대사의 거인 인촌 김성수 추효업적을 이룩한 맥촌 김형지
세계의 언론인 일민 김상만 학문, 덕행, 효를 다하신 선조들
과거에 급제하신 선조 사환들 호남 여인열전 여흥민씨부인
난중에 정절을 지킨 열녀 할머니들  갤러리 게시판
너는 커서 河西가 되라

 단종에 충효를 고루 다하신 신덕(愼德)

단종에 충효를 고루 다하신 신덕(愼德)
19세(世) 호(號);손암(孫菴). 휘(諱):신덕(愼德)
*1400년 휘 달근(達根)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시고 장성 증평 회계사(晦溪祀)에 배향(配享) 되셨는데
10세에 사서삼경을 통달 하시고 시와 재능이 뛰어나 주옥 같은 시를 많이 남기셨다.
1447년음사(蔭仕)로 장락원(掌樂院),주부(主簿) 종6품에 제수되고,1453년 송화현감(松禾縣監)으로 승진 임용 되었으나 어머님 노환을 간호 하기 위하여 사의를 표하니효성에 감복한 단종(端宗)은 청암 찰방(靑岩察訪)으로 전임 발령하여 어머님 병환을 간호하며 직무에 충실 하셨다.
1455년 수양대군(首陽大군)이 단종을 폐위하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자 단종임금을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비분을 참지못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초가집을 짓고 세상을 피하여 숨은 생활을 하며서 학문에 정진 하셨고, 1457년 12.24일 단종이 영월에서 시해당한 흉보가 이르자 통곡 기절하시니, 어머니께서 도리어 의연하게 "네가 도연명의 기개를 지녔으니 나는 마땅히 연명의 어미가 되리라"고 슬품을 참으며 격려 위로 하시었다. 집안에 영위를 만들어 분향하고 상복을 입고 지냈으며,해마다 단종이 승하한날만 되면,재수로 닭과 술을 가지고 산에 올라가시어 혈루를 뿌리며 북향 호곡(北向呼哭) 애통하게 제사를 지내시니,눈물이 닿으면 풀조차 말라 죽었다 고 한다.
공의 충의단심은 평소 공이 읊은 시편 도처에 강렬하게 드러남을 볼수 있다.
10세때 벌써 "아첨하는건 장부가 아니요,충의를 지닌이가 참다운 남아다. 백일이 청천에 떠있으니,그 밝음을 감히 누가 속이리오."라고 충정을 토로 하셨다. 또 이런 시도 있다."산에 올라 고사리 캐다가,문득 백이 숙제 생각하네.주나라 곡식 먹지 않고 만고에 강상을 붙들었네"이렇게 충의가 투철 하시니 세조의 불의가 용납될리 없었던 것이다.
자손들에게 벼슬하지 말라는 유명이 있고 유집이 전하며 회계사에 주향되시다.묘는 장성 황룡 간마동 죽림등 해좌원이다.
그의 충효사상은 삼강 오륜이라는 공자의 가르치심을 본밭아 예와 신을 지켜 사람답게 살라는 국민생활의 좋은 지침이며 어질고 의로운 선비정신의 본보기로서 우리 후손들이 깊이 새겨 본 받아야 할것이다.

*남기신 遺詩
아첨하는 이를 장부랴 하랴
충의로 뭉친 정신 남아(男兒)일레라.
저 푸른 저 하늘 빛나는 태양
뉘라서 밝지 않다 허튼 말 하랴.
<손암 유고중에서>

*북녁을 바라보니 빛 잃은 태양
우리 님 묻히신 곳 아득도 하네
봄 풀은 우거져 끝이 없어라.
외로운 혼령,그 원한 어이 풀리오.
티 빛으로 물들어 떨어진 꽃
해마다 두견새는 슬피 우리라.
<단종을 그리는 애절한 시 --손암유고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