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유학자 하서 김인후  영세 흥왕의 터를 잡은 하소부인
동방의 유학자 김인후 약전1 단종에 충효를 다하신 손암 김신덕
동방의 유학자 김인후 약전2 남문창의 맹주로 활약한 오천 김경수
동방의 유학자 김인후 약전3 임진란에 종군하신 취옹 김남중
단종에 충절한 복양제 김수노 삼양사 창립등 대사업가 수당 김연수
명.황제를 감동시킨 백암 김대명 영원한 법조인의 사표 가인 김병노
진주성에서 순절한 판관 김천록 한국 지성의 거목 남제 김상협
현대사의 거인 인촌 김성수 추효업적을 이룩한 맥촌 김형지
세계의 언론인 일민 김상만 학문, 덕행, 효를 다하신 선조들
과거에 급제하신 선조 사환들 호남 여인열전 여흥민씨부인
난중에 정절을 지킨 열녀 할머니들  갤러리 게시판
너는 커서 河西가 되라

 永世興旺의 터을 잡으신 閔氏 할머니

(雅號: 荷沼夫人)
려군 穩의 配 민씨 할머니는 세칭 雅號가 荷沼夫人 이시다. 여흥민씨 한성판윤 량(亮)의 따님으로 고려 충정왕 3년에 나시어 천품이 영면하시고 학문을 좋아하시어 經.史.諸子百家를 두루 익히시고 풍수지리에도 통달 하시었습니다.의연한 기상과 크고 넓은 局量에 숙덕을 겸비하시어 후세에 우리나라 여류삼현(女流三賢)이라 칭송받는분 이십니다.
사대부 가문의 범절과 법도에 따라 규모있게 집안을 다스리시며 忠.孝.友.의 가풍을 이르키시고 흥려군 할아버지께서 國事에 전념하실수 있도록 내조를 다 하셨습니다.

기 1413년 민무구,민무질 형제의 옥사가 일어나자,할머니께서는 태종비 원경왕후와 이종사촌간 이라 그 여파로 양주목사 재임 중 이시던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시는 화를 입으셨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불행한일로 가문의 안위조차 예측할수 없는 고비에서 할머니께서는 "서울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곳에가 은신하고 있으라"는 원경왕후의 귀뜸을 받고 영단을 내려 낙향을 결행 하셨습니다.
서울을 빠져나오긴 했으나 민씨 부인으로서는 갈곳이 없었다.관향인 울산은 피난지로서 전혀 적합치 않았다.
민씨부인이 슬하의 달근,달원,달지 3형제와 가족들을 거느리고 정처없이 천리난행(千里難行) 남하하다가 자리잡은곳은 전라도 장성땅이었다.
그녀는 어느 산마루에 이르러 지친 다리를 쉬면서 그 아래에 질펀하게 펼쳐진 벌판을 바라보았다.
언듯 보아도 터를 잡는데 있어 그다지 손색이 있을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산마루에 앉은채 나무로 깍아 만든 罵를 공중으로 띄워 날렸다.터를 잡고 삶의 보금자리를 꾸리기 위함이었다.나무로 깍아 만든 그 매는 푸른 하늘을 날다가 한참만에야 맥동(麥洞)이라는곳에 내려 앉았다.그곳은 장성 네거리에서 가까운 盆地로,벌이 질펀하게 펼쳐저 있었으며 아득한 곳 이었다. 그녀는 세아들을 거느리고 맥동으로 향했다.

"이곳이 곧 울산 김씨네가 만대를 누릴 땅이다!"


동에 도착한 민씨부인이 기뿜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그때부터 울산 김씨는 장성을 본거지로 하여 크게 세력을 펼치게 되었다.
황룡면 매동리에 삶의 터전을 잡아 정착하시었으며 1421년 71세로 생을 마치시고 스스로 잡으신 명정리 복부혈(伏釜穴)에 묻히셨다.

머니께서는 "내가 죽으면 方丈山 기슭 명정리에 묻어다오 그러면 말탄(顯達한) 자손들이 밀등에 가득할 것이며 맥동 집터에서는 선정(先正)이 나리라 자손중에 현인이 나면 필암이 서원터가 될것이라고" 예언하셨답니다.이할머니의 말씀은 무섭도록 적중했고 할머니 말씀데로 우리 가문은 전국 각지에 번지고 피어나 국내 굴지의 명문 집안이 되었고 앞으로 무궁히 융성할겄입니다.
이모든 일들이 민씨할머니의 원모(遠謨)와 예지의 덕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이로서 흥려군은 중시조로서, 정부인은 가문 중흥의 슬기롭고 어진 할머니로서 후손들의 숭모와 흠향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그녀가 이곳으로 피신할때 데려온 達根,達源,달枝등 세 아들은 모두 장성하여 司正 벼슬을 지냈을 뿐만 아니라 世宗大王 六寸契 에도 참여했다.그리고 이들 삼형제의 자손을 長派,中派,季派라 일 컷는데 長派는 함안 진주 산청 등에서,중파는 장성 고창 부안 논산등지에서 현재까지 세거하고 있으며,계파도 장성 화순 고창 정읍 대덕 등지에서 번창하여 명문의 후예로 일컬어 지고 있다.

*1994년 민씨할머니의 명정묘역은 전국각지의 일가들의 협력으로 대대적인 정화사업을 하여 공원화하고 제실을 보수 하였으며 문중 교육원 시설까지 준공함으로서 실로 문중 화합과 우의 돈독의 교육장으로서의 역활을 다할수 있게 되었으며 참으로 뜻깊은 사업입니다.

-------------------------------------- 荷沼夫人 由來 ------------------------------------------------
우리 先祖 閔氏 할머니는 伏釜穴等 身後之地로 손수 터를 잡으시어 우리 家門을 크게 富興시킨 中始祖로서 역대 王陵 을 能可하는 天下 明堂으로 風水 地理에 對한 深오한 慧眼이 있었기에 可能했다. 이는 朝鮮王朝 建國에 關與 하여 漢陽宮 터를 잡은 무학國師의 영향이 많은 듯하다.
閔氏 할머님은 當時 漢城判尹인 閔亮의 따님으로 幼年시節 깊은 學問에 造詣가 깊었고,
當時 漢陽宮터를 잡아 宮城을 築造하던 무학國師가 漢城判尹이던 父친과 業務上 많은 關階로 自然 스러이 接囑, 무학國師가 漢城判尹宅 出入을 通하여 風水地理나 敎育, 講論이 있었던 것이다.
무학國師의 風水地理에 對한 영향으로 閔氏 할머니는 理論을 定立 荷沼訣이라는 冊子를 쓰시고 훗날 長城으로 避難하여 鳴鼎里 복부혈 等 大明堂을 잡으신 것이다.
現代에도 많은 地理 團體나 名士들이 앞 다투어 鳴鼎里 伏釜穴 觀山을 통하여 讚辭를 하는
大明堂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