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유학자 하서 김인후  영세 흥왕의 터를 잡은 하소부인
동방의 유학자 김인후 약전1 단종에 충효를 다하신 손암 김신덕
동방의 유학자 김인후 약전2 남문창의 맹주로 활약한 오천 김경수
동방의 유학자 김인후 약전3 임진란에 종군하신 취옹 김남중
단종에 충절한 복양제 김수노 삼양사 창립등 대사업가 수당 김연수
명.황제를 감동시킨 백암 김대명 영원한 법조인의 사표 가인 김병노
진주성에서 순절한 판관 김천록 한국 지성의 거목 남제 김상협
현대사의 거인 인촌 김성수 추효업적을 이룩한 맥촌 김형지
세계의 언론인 일민 김상만 학문, 덕행, 효를 다하신 선조들
과거에 급제하신 선조 사환들 호남 여인열전 여흥민씨부인
난중에 정절을 지킨 열녀 할머니들  갤러리 게시판
너는 커서 河西가 되라

 세계적인 언론인 一民(일민) 相万(상만)

- 본관 : 울산
- 호 : 일민
- 활동분야 : 언론
- 국제언론인협회 종신명예회원을 지낸 한국의 국제적 언론인.
- 출생지 : 전북 부안
- 주요수상 : 대영제국명예코만더훈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 국제언론인협회 종신명예회원을 지낸 한국의 국제적 언론인.

1910년 전북 부안 출생.1994년 84세로 타계.
성수(性洙)의 장남. 1933년 일본주오대학[中央大學] 예과를 수료하고 1936년 영국 런던대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1940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학부를 졸업하였다. 1969년 명예법학박사(연세대학교), 1972년 명예문학박사(중화학술원), 1985년 동아일보사 업무국장 ·이사가 되고 1955~1982년 고려중앙학원 이사를 지냈다.

1961년 동아일보사 전무이사 ·발행인,1964년 한영협회(韓英協會) 회장, 1966년 동아일보사 부사장, 1971~1977년 동아일보사사장·발행인을 역임하였다. 사장직에 있던 1974~1975년에는 박정희(朴正熙) 정권에의해 자행된 동아일보사와 동아방송에 대한 광고탄압사태를 맞아 이를 극복하는 데 큰시련을 겪었다.

1974년 한영로터리클럽 회장, 1973년 아시아신문재단 부회장,1976~1990년 같은 재단 회장, 1977년 동아일보사 회장, 1978~1986년 국제언론인협회(IPI) 본부이사, 1981년 동아일보사 명예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 밖에 1982년 고려중앙학원 이사장, 1983년 한영수교 100주년기념사업위원장, 1984년 신문인협회 고문, 1986년 IPI 종신명예회원이 되었다.

대영제국명예코만더훈장, 국제신문발행인협회 자유의 금펜상, 대영제국명예기사 작위, 국민훈장 무궁화장, 중화민국 문화훈장,미국 미주리대학 언론공로상, 프랑스 언론공로훈장 영주장(領主章), 독일 공로대십자훈장 등을 받았다.

일민께서는 선고 인촌의 유훈을 받드러 고려 중앙학원과 동아일보를 오늘과 같이 크게 발전 시켰으며 화려한 경력과 수상사항이 말해주듯 헌신적이고도 겸양과 무실력행위는 그의 몸 가짐은 후학들의 사표로 길이 빛날것 이다.
민주주의 신봉자로서 한평생을 언론과 교육에 헌신하는 공인의 자리에 게시면서 주위의 친지 후학들을 친 동기 처럼 보살피고 거두시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전에 남의 애기에 귀 기울이시고 남의 뜻을 존중하는 겸양의 실천자 였으며,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후한 극기의 평생을 사셨다.

60년대 이래 동아공예대전과 명인 .명창 대회를 열어 꺼져가는 우리 전통문화의 전승.발전을 꾀하고,서양의 수준높은 공연 예술을 들여와 우리 문화에 활력을 불어 넣은 일에 열중 하시어 오늘날 국제화.세계화의 소리가 높지만 일민께서는 이미 40년전에 문화적 삶이 바로 생활의 질도 높이고 정치의 민주화도 이룩 한다는 사실을 실천하셨다.
또 그렇게 바쁘신 중에도 문중의 여망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대종회 회장직을 7년간이나 맡으시고 문중의 화합과 단결의 기틀을 만드시고 하서선조의 동상건립등 기념사업을 꾸준히 추진하고 민씨선조 묘역 정화사업을 추진하시는등 실로 문중사에 기여한 공 지대 하셨다.

1994년1.26 향년 84세로 한점 부끄럼 없는 생활을 마치시고 경기도 남양주군 화도읍 선친계하에 안장 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