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유학자 하서 김인후  영세 흥왕의 터를 잡은 하소부인
동방의 유학자 김인후 약전1 단종에 충효를 다하신 손암 김신덕
동방의 유학자 김인후 약전2 남문창의 맹주로 활약한 오천 김경수
동방의 유학자 김인후 약전3 임진란에 종군하신 취옹 김남중
단종에 충절한 복양제 김수노 삼양사 창립등 대사업가 수당 김연수
명.황제를 감동시킨 백암 김대명 영원한 법조인의 사표 가인 김병노
진주성에서 순절한 판관 김천록 한국 지성의 거목 남제 김상협
현대사의 거인 인촌 김성수 추효업적을 이룩한 맥촌 김형지
세계의 언론인 일민 김상만 학문, 덕행, 효를 다하신 선조들
과거에 급제하신 선조 사환들 호남 여인열전 여흥민씨부인
난중에 정절을 지킨 열녀 할머니들  갤러리 게시판
너는 커서 河西가 되라

 법조인의 師表(사표) 가인 炳魯(병로)

- 본관 : 울산(蔚山)
- 호 : 가인(街人)
- 활동분야 : 법률, 정치
- 출생지 : 전북 순창(淳昌)
- 주요수상 : 건국훈장 독립장(1963)

본관 울산(蔚山). 호 가인(街人). (1887년---1964년)
1887년 전라북도 순창(淳昌)에서 출생하고,18세 때 담양(潭陽) 일신학교(日新學校)에서 서양인 선교사에게 산술과 서양사를 배웠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용추사(龍湫寺)에서 최익현(崔益鉉)의 열변을 듣고 동지들을 모아 순창읍 일인보좌청(日人補佐廳)을 습격하였다.

은 해 창흥학교(昌興學校)를 설립, 신학문을 가르쳤으며 1910년에 도일(渡日), 1910년일본 명치대학에 유학 법학전공 1913년에 메이지대학[明治大學]을 졸업하였고 일본 유학 중 《학지광(學之光)》의 편집장을 지냈다. 1915년 경성법전(京城法專) 조교수와 보성전문(普成專門) 강사를 역임, 1919년에 경남 밀양 지방법원 판사를 여김하고, 1920년 변호사를 개업하였고 1927년 신간회(新幹會)의 중앙집행위원장이 되었다. 광주학생운동(光州學生運動), 6·10만세운동, 원산파업사건(元山罷業事件), 단천노조사건(端川勞組事件) 등을 주로 맡아 무료 변론을 통해 독립운동을 전개 하시고 일제 식민지 정책이 갈수록 가혹해지고 탄압,감시,회유등 수법이 악랄해지자 일제와의 타협을 피해 경기도 양주군에 칩거 농사를 지으면서 일본이 망하는날을 기다리셨다.

본이 전쟁에서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8·15광복 후 서울로 돌아와 고려민주당,한국민주당등 창당에 참여하시고 , 1947년 7월 미군정의 司法部長에 취임하여 법 질서를 바로 잡고,법전 편찬 위원장을 맡아 六法을 개편하고 헌법 초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셨다.

1948년
8월에 초대 대법원장(大法院長)에 취임하였다. 1957년 대법원장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9년간 사법부의 권위와 기반을 확립하고 이승만 독재정권이 사법부의 독립을 위협 할 때마다 정면으로 맞서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 한국 사법부의 초석으로 지금도 법관들의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만 70세에 정년퇴임을 하는 이임식에서"그 동안 내가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 하는것은 전국 법원 직원에게 지나치게 무리한 요구를 한것이다.인권옹호를 위하여 사건 처리의 신속을 강조하고,살아갈수 없을 정도의 보수를 가지고도 그데로 살아가라고 한결과가 된것이 그러 하였다.나는 사법 전 종사자에게 굶어 죽는것을 영광 이라고 그랬다.그것은 부정을 범하는 것 보다는 명예롭기 때문이다."라고 하며서 자신의 소신 때문에,고생한 휘하 직원들을 생각하며 목메여 말 하셨다고 한다.

임 뒤에는 자유법조단(自由法曹團)의 대표, 민정당(民政黨) 대표최고위원, 국민의 당 대표최고위원 등을 지냈다.

1963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대법원은 대법원 신청사 2층 대법정 앞에 街人翁(가인옹)의 胸像(흉상)을 건립하고,1995년 11.24근대 사법제도 도입 일백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흉상 제막식을 갖고, 법조인의 영원한 사표로 추앙 받도록 하였다. 이 제막식에는 가인의 장손인 김원규,손자 김종인등도 참석하였다.

*法曹人의 師表(법조인의 사표)
街人께서는 항일 투사로서,법의 실천자로서,자유의 실천자로서,청렴강직한 삶으로 일관 하셨고 어지러운 세상에 公人으로서 무었을 할것인가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할것인가를 가릴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법관의 자격으로
1.(첫째):법관은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과 명예를 지키는 일을 수행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인격 수양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2.(둘째):법을 공정하게 해석하고 집행하여 국민의 신뢰를 떨어 뜨리지 않기 위해서 깊은 연구와 단련을 계속해야 한다.
3.(셋째):법관에게 가해지는 직접.간접의 강제나 압력 또는 정실에 기울지 않는 엄정한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는등 세가지 조건을 제시하시고 몸소 실천 하였다.
그리고 국록을 받는 사람은 돈을 탐내서는 않되며, 법에 종사하는 사람은 부정을 범하기 보다는 굶어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