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유학자 하서 김인후  영세 흥왕의 터를 잡은 하소부인
동방의 유학자 김인후 약전1 단종에 충효를 다하신 손암 김신덕
동방의 유학자 김인후 약전2 남문창의 맹주로 활약한 오천 김경수
동방의 유학자 김인후 약전3 임진란에 종군하신 취옹 김남중
단종에 충절한 복양제 김수노 삼양사 창립등 대사업가 수당 김연수
명.황제를 감동시킨 백암 김대명 영원한 법조인의 사표 가인 김병노
진주성에서 순절한 판관 김천록 한국 지성의 거목 남제 김상협
현대사의 거인 인촌 김성수 추효업적을 이룩한 맥촌 김형지
세계의 언론인 일민 김상만 학문, 덕행, 효를 다하신 선조들
과거에 급제하신 선조 사환들 호남 여인열전 여흥민씨부인
난중에 정절을 지킨 열녀 할머니들  갤러리 게시판
너는 커서 河西가 되라

 삼양사 창립등 대사업가 수당 秊洙(연수)

35세 호:秀堂(수당). 휘:秊洙(연수)

1896년 출생하고 1979년 84세로 영면하심.

1911년
일본에 유학,한국인으로는 최초 京都帝大(경도제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수재이시며,1922년 경성 뉴직회사전무,경성방직상무직을 맡아 일본기업의 횡포로 어려움을 겪으시면서도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며 확고한 기반을 마련하였으며,이어 고무공장을 설립하여 한국최초로 "별"표 고무신을 생산하였다.
三水社(삼수사)를 설립하여 장성,고창,부안,영광등 각처에 산재한 논을 農場化(농장화)하고 모범농촌만들기 운동을 전개 하였으며 농업의 기업화에 크게 기여 하였다.

1931년
삼수사를 지금의 三養社(삼양사)로 개명하고 함평,고창등에 간척사업을 벌려 농장을 만드시고, 1932년 형인 仁村(인촌)이 운영하던 중앙학교에 우리나라 최초의 석조2층 체육관을 건립하는데 도왔으며,보성전문학교를 인수 하는데도 5천석지기의 농장을 기금으로 기부하는등,고려,중앙학원을 키우는데 크게 이바지 하는등 형제간의 우의도 모범적 이었다.

1946년부터 30여년간 삼양사를 근간으로 고창에 대규모 염전축조,울산에 제당공장 건립,전주에 폴리에스텔공장건설,그리고 삼양통상, 삼양모방,삼양중기,삼양제닉스를 주력 기업으로 방대한 그릅군으로 성장시키고,
만석군 가정에 태어나 사치와 허영을 멀리하고 시종 정치에 초연하며기업에만 전념하고 순수한 민족 자본으로 기업을 육성한 모범사업가로 유명하다.
秀堂(수당)께서는 주위사람들로부터 돈버는 선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돈을 벌어 들였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위하여서는마음놓고 써본일이 없을뿐만 아니라 집안 식구들을 위하여도제데로 돈을 쓰지 않고,심지어는 밥상에 오르는 반찬까지도 가지수를 제한하였다.그러나 일찍이 養英會(양영회)를 설립하여 불우한 많은 사람들을 도왔으며 삼양사 종업원들을 위한 수당장학회를 설립하여 학비와 연구비를 보조 하엿고 각종 공공사업에 인색하지 않아 사회사업가로도 널리 알려져 칭송을 받았다.

1977년 82세의 고령임에도 그는사업을 위하여 제주도와 목포에있는 양돈장을 둘러보고,목축업이 장래성이 있다고 판단, 영광농장에비육돈 사육장을 생의 마지막 사업으로 마련하여 사업에 대한 집념과 정열에 측근들을 탄복케 하였다.

철인으로 불리던 그도 드디어 숙환으로 병상에 눕게되고 좁은 땅이 한이어서 겨레의 가난을 차마 볼수없어 평생을 하루같이 달리고 달려온 그는 "낭비를 삼가하여 財(재)를 기른다"는 교훈을 남기고 84세를 일기로 끝없는 잠 속에 잠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