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유학자 하서 김인후  영세 흥왕의 터를 잡은 하소부인
동방의 유학자 김인후 약전1 단종에 충효를 다하신 손암 김신덕
동방의 유학자 김인후 약전2 남문창의 맹주로 활약한 오천 김경수
동방의 유학자 김인후 약전3 임진란에 종군하신 취옹 김남중
단종에 충절한 복양제 김수노 삼양사 창립등 대사업가 수당 김연수
명.황제를 감동시킨 백암 김대명 영원한 법조인의 사표 가인 김병노
진주성에서 순절한 판관 김천록 한국 지성의 거목 남제 김상협
현대사의 거인 인촌 김성수 추효업적을 이룩한 맥촌 김형지
세계의 언론인 일민 김상만 학문, 덕행, 효를 다하신 선조들
과거에 급제하신 선조 사환들 호남 여인열전 여흥민씨부인
난중에 정절을 지킨 열녀 할머니들  갤러리 게시판
너는 커서 河西가 되라

 진주성싸움에서 순절한 판관공 天祿(천록)

진주성싸움에서 순절한 판관공 天祿(천록)

26세 자:聖卿(성경). 휘:天祿(천록)
공은 경기도 여주 判官(판관)을 지냈는데,어릴적부터 부모에 대한 효심이 강하고 성격이 호방하여 사람들과 사귀기를 좋아하였으며 용기와 지략이 남달리 뛰어난 분 이었다고 한다.
1592년 4월 부산으로 침입한 왜군은 그해 5월에 서울 까지 침범하여 전국토가 戰亂(전란)으로 휩싸이게 되자,의병으로 참여 신명을 다하여 군량을운반하고,남원의 최여운 형제와 함께 의병을 지휘하여 왜군 수백명을 물리치셨습니다.

1593년 6월 晉州城(진주성) 전투에서는 의병장 김천일 경남 우병사 최경회등과 같이 진주성을 지키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싸웠으나 외부의 원조가 없자 의분과 정의감으로 挺身獨出(정신독출) 전기와 군량을 운반하는등 결사적인 활약을 하시다가 진주성이 함락 되면서 장렬하게 전사하시니 그 공을 높이 사서 宣武原從功臣二等勳(선무원종공신2등훈)을 추서 받으셨다.
어수선한 난리속에서도 후손들이 진주성에 가서 능처럼 쌓인 사체 더미를 헤쳐 屍身(시신)을 찿아 장사를 지냈으니 지금의 금곡 상포동 선산을 보존하게 된것이다.

1890년 鄕廳(향청)의 관리들이 巡營(순영:지금의 도청)에 소장을 올려 전달함으로서 왕이 忠臣旌閭(충신정여)를 세우고 複戶(복호:조세나 그밖의 국가적 부담을 면제 하던일)를 명하여 1892년 8월 광양읍 입구 섬다리 동편 산기슭에 정여를 건립하여 충절의 고장 광양의 표상이 되어 왔습니다.

1982년
國道(국도) 확장공사로 동 정여는 출신지인 금곡마을 앞에 이설 보존하고, 광양읍 유당공원 충혼탑 경내에 광양읍 향교 유림의 제청으로"정여이건사적비"를 건립 함으로서 길이길이 애국지사로서 추모하게 되고 자랑스런 울산김씨의 위상을 드높이게 되었다.

公에 대한 전해오는 이야기
1.왜군과 싸워 물리친 공로로 세운 정여는 일본인들에게 눈에 가시가되어 이를 파손 없애려고 일본관리들이"정여에 돌을 던져 마치면 다리와 허리가 아프지 않다.아이가 없는 여자는 득남을 한다"는 헛소문을 퍼뜨려 국도 섬다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돌을 던져 정여앞에 돌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2.공의 군복과 군기등 유품을 묘소 부근에 매장하여 두었는데 나라에 변란이 있거나 사회가 크게 혼란 할때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려는듯 군 장구 울리는 소리가 났다.